본문 바로가기

영화

카모메식당과 앤티크


 

카모메식당 vs 앤티크

외톨이 아줌마들의 핀란드 홀로서기와 케익가게 총각들의 달콤한 순정



지금 개봉되고 있는 영화 앤티크를 보면서 일본 인디영화 키모메 식당을 떠올리게 된건 아마 나뿐이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그 만큼 이 두 영화는 여러가지로 비슷한 점이 있다. 공통된 키워드와 주제가 이 영화들을 각각 1탄과 2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닮아있다.

그렇다면 이 두 영화를 주목하게 된 그 공통의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첫째, 그들은 음식점을 차린다.

단지 음식이 소재라는 것 외에도 이 영화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음식점을 차리고 그 가게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한 도시 외진 골목에 한 일본인 여자가 혼자 작은 식당을 하나 차린다. 그것도 스테이크나 스시를 파는 것이 아닌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식당을....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청국장이나 김밥을 파는 동네 분식집 쯤 되겠다.....흔하고 소박한 동네 작은 식당일뿐인 가게가 그곳 핀란드에서는 너무나 생뚱맞다. 게다가 주 메뉴는 지구 반대편 북유럽 핀란드인들에겐 너무 생소한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서구인들은 “검은 종이”라면서 김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김에서 나는 냄새도 적응 못한다고 한다.

당연히 가게에 손님은 하나도 없고 지나다니던 핀란드 동네 아줌마들은 가게 창밖에서 이상한 일본여자의 식당을 쳐다보며 쑤근거린다.


앤티크의 케익가게....

부자집 아들인 진혁은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케익가게를 차린다. 그런데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달디 단 케익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극도로 싫어한다. 그는 케익의 종류도 구별 못할뿐만 아니라 먹었던 케익을 화장실에서 다 게워낼정도로 케익을 싫어한다. 그런 그가 케익가게를 차린 이유는 단 하나, 어렸을때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이다.


둘째, 카모메 네명의 언니들과 앤티크 네명의 총각들

카모메 식당에선 네명의 여자가 나온다. 그녀들은 젊지 않다. 한번쯤은 결혼을 했을듯한 중장년의 여인네들....그러나 그녀들은 어떤 연유에선지 모두 혼자 핀란드로 왔다.

사치에가 식당을 차린지 몇 달 후 드디어 첫 손님이 찾아온다. 그 손님은 일본만화 매니아였고 사치에의 식당에 와선 뜬금없이 독수리오형제(갓차맨)의 주제가를 아느냐고 묻는다. 갑자기 가사가 생각나지 않던 사치에는 우연히 거리에서 일본여자 미도리를 만나게 되고 미도리는 독수리오형제의 주제가를 가르쳐준다. 그런 인연으로 미도리는 사치에의 가게에서 같이 일하게 된다. 미도리가 핀란드에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무작정 일본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세계지도를 펴놓고 눈을 감은 채 짚은 곳이 바로 핀란드였다.

그 후 공항에서 여행가방을 잃어버리고 가방을 찾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었던 또 한명의 일본여자 마사코가 등장...세 여인이 함께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던 어느날 세 여자의 가게에 알콜에 찌든 핀란드 여자 한명이 나타나고 네 명의 여자들은 친구가 된다.


앤티크를 차린 진혁은 솜씨좋은 파티쉐 선우를 고용한다. 그런데 선우라는 남자는 마성의 게이...그동안 일했던 가게마다 남자들과 온갖 염문을 뿌리고 다닌 후 게이라면 재수없다며 소리치던 진혁의 가게에 정착하게 된다. 그 이유는 진혁이 선우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기 때문.. 그 후 선우의 케익맛에 반해 제자로 삼아달라며 달려온 전직 복서 출신 기범.

거기에 어릴적부터 진혁을 보디가드로 쫓아다니던 덩치만 큰 순딩이 수영이가 가게로 찾아와 네 남자는 앤티크를 함께 꾸려간다.



셋째, 그녀들과 그들의 상처를 보듬는 가게

카모메의 네 여자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그 사연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이국만리 핀란드에서 혼자 식당을 차린 사치에...

제비뽑기처럼 무작정 뜬금없이 핀란드로 날라온 미도리....

한 평생을 아버지의 병구완을 하다가 결국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정처없이 핀란드로 날아왔으나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마사코....

남편에게서 버림받고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여자들이 차린 가게로 어느날 불쑥 찾아온 알콜릭 핀란드 여인....

네 명의 여자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면서 우정을 다져간다.

카모메는 갈매기란 뜻이라고 한다. 갈매기가 많은 핀란드의 항구도시 식당에서 네 여자는 열심히 일한다. 일류 레스토랑의 화려하고 훌륭한 음식이 아닌 사랑했던 가족이 만들어주었던 주먹밥...각자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소중하고 행복했던 가정에서 맛보았던 소박하고 일상적인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핀란드 사람들에게 먹여주고 싶다. 그녀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가게에는 호기심에 찬 핀란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그들은 그녀들이 정성들여 만든 주먹밥 오니기리를 맛본다. 어느새 가게에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핀란드인들이 가득찬 키모메는 따듯함과 화기애애함이 넘친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가정이 아닌 지구 반대편 핀란드에서 또 하나의 가정을 만들고 있다.

 

앤티크 사장 진혁은 어렸을때 유괴를 당했다. 무사히 살아 돌아왔지만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도저히 기억해 낼 수가 없다. 이십여년 동안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고 그 무엇에도 몰입할 수 없는 정서적 공황을 겪고 있다. 단지 그가 기억하는 것은 자신을 잡아갔던 유괴범이 케익을 매우 좋아했다것...그를 찾기 위해 케익가게를 차렸고 진혁은 결국 잊혀졌던 과거의 진실을 찾아낸다.

마성의 게이인 선우는 청소년 시절 엄마의 불륜을 목격하고 나서 충격에 빠진다. 충격의 가장 큰 이유는 엄마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 불륜상대가 다름 아닌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것...그 이후로 그는 여자만 보면 말을 못한다.

잘나가던 프로복서 기범은 의사로부터 더 이상 권투를 할수 없다는 선고를 받는다. 복서의 꿈을 버린 그는 파티쉐라는 다른 인생을 찾기 위해 선우를 스승으로 모신다.

아버지의 학대속에서 불행했던 엄마를 보아왔던 수영은 그 자신도 아버지를 닮아 마초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어릴때부터 함께 했던 진혁을 옆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부드럽고 소녀같이 여린 마음을 가졌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네명의 남자들은 누구나 있을 법한 자신의 상처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내보이지 않는다. 단지 사춘기 소년들처럼 거칠게 치고 받거나 좌충우돌하면서 스스로 조용히 성숙해간다. 네 명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은 그들이 만드는 케익과 어울려 향긋하고 달콤하며 유쾌하다.




가정을 잃어버린 카모메 언니들의 핀란드 홀로서기와 앤티크의 팔팔한 꽃미남 총각들이 보여주는 소녀보다 더 섬세한 남자들의 순정.....

여성성에 갇혔던 언니들의 남성같은 이야기와 남성성에 갇혀있는 오빠들의 소녀같은 소란스러움. 앤티크는 자칫 거북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동성애를 코믹하고도 친근감있게 보여준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두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오버랩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만드는 맛있는 음식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가장 즐겨먹던 식사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억해내거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 케익을 찾는다.

아마 그들이 만드는 것은 한끼의 식사나 케익이 아닌 바로 행복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