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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드라마

마왕이 대마왕이 되지 못한 이유?


 

2007년도에 방송됐던 드라마 마왕,,,

솔직히 1회 보고는 다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일본에서 방송된 마왕이 한국 마왕 리메이크판 이란걸 알고 다시 관심을 갖게 됬다. 내가 알기론 욘사마 호텔리어 말고는 여태껏 걔네들이 우리 드라마를 리메이크한게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지.

초반엔 뭐랄까 특이하긴 한데 뭔가 집중되는 느낌이 없고 사건들만 어지럽게 나열되고 있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영상적인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저 스트레이트로 사건과 사건이 진행되어 가며 평이한 화면에 이렇다할 인상적인 미장센은 보기 힘들다.  감각적인 이야기구조와 화면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을 잡기엔 초반 스토리가 너무 무뚝뚝하다고 할까. 그러다가 5회 정도 들어가니 스토리가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이 드라마의 비범함과 스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그러니까 얘기는 이렇다. 약한 친구 괴롭히지 말라며 바른말하다가 욱하는 불량청소년한테 칼맞고 졸지에 죽어버린 주인공의 형.....근데 가해자 아버지는 검은 돈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가진 실세 정치인......학교나 언론, 주변 증인들에게 손을 써서 입을 막고 결국 가해자가 무죄로 풀려나게 되자 정줄놓은 어머니까지 그 바람에 사고로 죽어버렸다. 하루아침에 형도 죽고 하나뿐인 가족인 엄마도 죽고.....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돈과 권력으로 씻어놓고는 변함없이 잘먹고 잘사는데....덜컥 하루아침에 세상천지 오갈데 없는 고아소년이 되버리다니. 세상에 이럴수도 있나. 인생의 가장 민감한 사춘기시절에 엄청난 사건을 겪은 주인공 주지훈은 복수의 칼을 갈고 12년 후에 유능한 변호사가 되서 뚝딱 나타난다.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모습으로 말이지. 그리고는 그때의 가해자였던 불량청소년 앞에 그의 주변인물들을 차례 차례 희안한 방법으로 하나씩 하나씩 죽이면서 알쏭달쏭한 타로카드 달랑 한 장 보내면서 등장한다. 내가 누구게? 나 잡아봐라~ 하면서.




그렇다면 그 불량청소년은 어찌되었을까. 아버지의 빽으로 소년원신세는 면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도 마음 편할리는 없을 터. 반항심이 강했던 질풍노도시절을 지나 세상의 나쁜 놈들은 모두 내가 잡겠다는 참회의 결심이었는지 돈방석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불철주야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되어 바쁘게 사는 형사가 된 불량청소년 엄태웅.

12년전의 그 사건을 목격했으나 아버지의 돈다발에 입을 막아 주었던 친구들과 그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되고 다음은 누굴 죽일거야 타로카드로 미리 알려오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죽게 되는 이유는 제 3의 인물이 저지르는 그들간의 원한관계에 의한 자발적인 살인이었기 때문.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수년전부터 철저하게 계획되어진 일...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댓가로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었듯이 타로카드를 보내는 복수의 화신 주지훈은 마치 각본을 쓰는 작가인양 신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듯 자신의 사냥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들 간의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누구를 죽이기 위해서 누구를 움직여야 하는지 파악한 장기판의 말을 움직이는 마왕이었다.




이 드라마가 경찰서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 드라마지만 합리적인 이성과 과학수사로 해결 되는건 별로 없어 보인다. 우습게도 사건의 가장 큰 실마리가 되는 건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는 사이코 메트리라는 초능력....그러니까 어떤 물건을 손에 대기만 하면 바로 머릿속에 동영상이 떠주시는 능력을 가진 여주인공 신민아가 항상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간다. 여주인공을 사이에 둔 두 남주의 멜로가 살짝. 터프한 엄태웅이냐 냉철한 주지훈이냐. 마침내 신민아는 냉혹함이 무너져버린 한없이 여린 마왕의 순정을 주시하지만 결국 두 남자의 주검앞에 선채 드라마는 엔딩으로 향한다....

 



뻔하디 뻔한 유치한 멜로, 짜증나는 불륜, 식상한 삼각관계, 이쁘면 다 된대렐라 신데렐라, 한국인 1%를 차지하는 극소수 재벌 뒷다마 스토리에다 시청률만 올랐다 싶으면 별 내용없이 사건 늘어놓고 뒷심 잃어버리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그간의 한국드라마답지 않게 소재도 독특, 극본도 탄탄, 연기도 제법인데 청률이가 기대만큼 안 따라갔다나 어쨌다나. 하기사 좀 나이있으신 분들은 몰입해서 보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 환타지나 초능력 그런거가 중장년에겐 좀 안 먹히기도 할테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젊고 스토리 늘어지는 법도 없이 내용이 너무 쿨하거든. 게다가 중간 중간 등장하는 파우스트니 지옥문이니 너무 인문학적이어서 원....ㅋㅋㅋ


아무튼 평소 한국드라마 짜증증세 때문에 좀만 맘에 안들면 차라리 다큐채널로 돌리곤 했던  내게 이런 독특한 소재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나와줬다는게 대단히 감명깊었다.

그리고 한가지.....주지훈은 복수의 칼을 갈면서 유능한 변호사가 됬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고아 청소년이 자력으로 변호사가 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쇼킹한 일...인생 12년이면 칼도 무디어질법한데 그 깊고 서슬 퍼런 복수의 애증이 공감되기도 어렵고 영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거지. 뭐 이 얘기의 주요 화두는 사건을 푸는 미스테리와 스릴에 있긴 하지만. 헌데 이왕이면 그 명석한 두뇌를 개인적인 복수에서 머물지 말고 좀더 판을 크게 짰으면 어땠을까. 검은 정치인 한명에서 머물게 아니라 그 주위에 먹이 사슬 같은 사회의 부조리 그물 말이다. 툭하면 터지는 무슨무슨 게이트에다 양심선언했다고 온갖 불명예를 감수해야하는 사람들, 먹고 살겠다고 고공시위하다 죽은 노동자,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이라고 모가지 잘린 직장인들...좋은일을 해도 빨갱이가 한 짓이라고 악플을 달고, 촛불들면 다 빨갱이고 심지어 길에서 풍선 나눠줬다고 잡아가는게 이 세상판국인데 전국 각지에 억울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말이다. 마왕이 아닌 대마왕이 등장해서 누군가에게 복수의 타로카드를 보내는 드라마를 꿈꾸는 건 나의 지나친 바램인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