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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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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배용준, 김혜수, 윤손하, 이재룡, 박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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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지난 99년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인터넷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는 몇 안되는 드라마 중 하나이며 최근 욘사마의 한 일본팬이 평론집을 내기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려 44부나 되는....그러니까 44시간을 모든 사적인 활동을 중단한 채 본방에 이어 재시청 감행.....드디어 완주...그러나 그 소감은 “한마디로 정리되기 힘듬”이다.

이 드라마도 결국 흔한 불치병 드라마이며 인생은 돈이냐, 사랑이냐..란 해묵은 주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별 다른점은 “당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란 물음을 던지고 있는 점이다. 


여느 멜로드라마가 그렇듯 여기에도 소위 난관이 많은 사랑이 등장하고 결혼의 조건이 나온다. 가난해서 안되고, 고아라서 안되고, 스승과 제자라서 안되고,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반대해서 안된다. 현실을 살고 있는 남녀는 사실 대부분 자기와 비슷한 사람과 만나며 순탄한 선택을 한다. 왜? 아무리 절실했던 감정도 긴 세월과 인생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부자집 아들행세를 해가면서까지 신분상승을 하고 싶었던 청년은 친구의 배신으로 온갖 고생을 해서 갖게 된 직장을 잃고도 결국 사랑을 선택한다. 마치 로또 당첨되듯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 재벌 딸이 손짓하는 인생의 탄탄대로를 거절하고... 

“ 가난이 지겨워서 돈많은 여자 꿈에도 바랬는데 그 꿈이 이뤄져가는것도 같은데 난 기쁘지 않아요. 왠줄 알아요? 이교수 당신 때문에...난 사랑같은거 별거아니라고 믿은 놈이에요. 울엄마 날 버리고 가면서 사랑한다고 했어요. 버리고 갈 수 있는게 사랑이라면 난 필요없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바보같지만 그런 엄말 많이 닮은 당신이 좋아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이제부터 미친놈처럼 다르게 살아 볼께요. ”

“ 당신이 날 사랑한다고 했을때 내 욕심은 다 채워졌어요. 잃은거 아무것도 없어요. 난 지금 당신을 얻었단 생각밖엔 안들어요.”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드라마라는 허구에서 보여주는 진실한 사랑?에 대해 맘편히 즐길 수 있었다. 그래...드라마니까...사랑만으론 해결되지 않는게 세상이고 돈 많은 여자가 아무 조건없이 자길 좋아해주는데 그걸 마다하고 순탄하지 않은 사랑을 선택하는 구나. 그래서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거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걸 보여 주니까.


그런데 중반부부터 이 드라마는 달콤한 허구이기를 포기하고 현실을 투영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동생의 사고로 친구가 사채를 끌어다 쓰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불법행위에 가담했지만 결국 친구는 감방에 갇히고 집은 차압이 걸려 온 가족이 다 길거리에 나 앉게 된 남주인공.

밤에는 수산시장에서 막노동 낯에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코피 쏟아가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건만 먹고사는 고통이 엄청난 해일처럼 휩쓸자 그는 더 이상 사랑 따위를 선택하기가 귀찮아졌다.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는 결국 사랑을 포기하고 재벌 딸과 약혼해버린다. 이제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렵게 서로 사랑을 확인 했는데...돈이야 있을때도 없을때도 있는거지...아무리 알거지가 된다고 해도...젊은 놈이 저렇게 금방 맘이 변해서 돈을 쫓아가다니....


아마 이쯤에서....이야기가 끝났다면 이건 허구가 아닌 현실 그 자체였겠지...


그러나 드라마는 이쯤에서 또 다른 허구를 들이민다.

남주인공의 뇌종양 말기....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큰 풍랑을 겨우 잠재우고 나서 마음속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마음을 닫기로 작정했던 그....사는게 사는것 같지 않았던 그는 차라리 그대로 죽기를 바란다. 그런 그 앞에 사랑했던 여인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는 이젠 절대 헤어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그와의 결혼을 선언한다. 생명이 몇 달 남지 않은 그와....


“ 난 걜 이대로 보낼 수 없어.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한테 버림받고 사랑하는 사람도 옆에 없이 서른도 안된 나이에....이건 너무 억울하잔아.. 말리지 마...난 걔 옆에 있을거야. 누가 뭐래도 이제 우릴 떼놓지 못해. ”

 보통 멜로라면...여주인공이 몇 달남지 않은 사람옆에서 남은 시간을 둘이서 행복하게 보내려고는 하겠지만 결혼까지 하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런데 멀쩡했을때 그토록 반대에 부딫쳐 하지 못했던 결혼을 이제 아주 쉽게 치러버린다. 난 또다시 마음이 불편해진다. 작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결혼이 장난인가? 그토록 여러 가지 이유들로 두 남녀의 결혼을 막더니 이제와서 너무도 쉽게 그 갈등이 풀리다니...앞날이 창창한 여교수가 교수직도 버리고 모든걸 다 포기한채 과부가 되려고 하는구나...참 무모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결단을 내리고 자신에게 와 준 여자를 보는 남주인공...그제서야 그는 비로소 살고 싶다. 그 여자를 놓치고 싶지 않다....다시 살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건강했지만 힘들었던 삶보다 지금의 몇 개월이 더 행복하다...귀가 안들리고 눈이 안보인다...이제서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말소리를 듣는게 귀한거라는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죽지 않으려고  버티고 또 버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오래 행복할수 있도록...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틴다....

1년을 버티고 난 어느날 아침 그녀는 그의 주검옆에서 말한다.

 

“.....아침 10시가 넘었다. 재호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재호를 깨우지 않겠다. 다시 그가 눈뜨는 세상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재호를 깨우지 않겠다.... ”

 

이 드라마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게 결말을 통해 드러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한 인간을 사랑한 것이리라. 그것도 물질적으로 아주 벅찬 세상을 살아야했던....

무모한 결혼이 왜 나를 불편하게 했는지의 정체도 드러났다. 아무리 사랑해도 난 절대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니까...


이 드라마는 중반부부터 어두운 현실을 오히려 더 드러내놓고 그 상처를 매만져주라고 시청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누구나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진실을 까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드라마는 보기 싫다. 단지 가뿐 현실을 잊게 해 줄 달콤한 이야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게 이 드라마가 화제작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저조했지만 지금까지 매니아층을 형성하면서 계속 기억되는 이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끊임없이 모성애를 자극시키는, 그러나 너무나 남자답고 강하게 살았던, 불쌍하기 짝이 없는 한 청년 재호를 쉽게 잊을 수 없는 나 같은 여성팬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이 드라마는 조용히 내게 물어본다.

사람이란 누구나 죽을날을 알지못할뿐인 시한부인생...

당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