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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드라마

오타쿠도 멜로드라마 주인공이 될수있다! - 일드 전차남(電車男)

 

이 열차에 혹시 내 신붓감이 타고 있나?


“ 이 열차에 혹시 내 신붓감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

 지하철을 타면 이런 모 중매회사의 광고를 보게 된다.

하기사 매일 수많은 남녀가 지나다니는 곳이니 짝을 찾는 쏠로라면 이 광고를 보고 주위를 한번쯤 둘러보았을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지하철이란 꽤 재미있는 공간이다.

최신 유행 패션으로 열심히 치장을 한 젊은 직장 여성들과 흰 와이셔츠에 이어폰을 꼽고 각개가방을 멘 근면해 보이는 젊은 남성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긴 줄을 서다가 모두들 함께 좁은 객차 안으로 줄지어 몰려 들어가서는 살이 부딫치고 몸을 포갠다.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흔들리는 열차속에서 풍겨오는 누군가의 체취를 맡으며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

항상 마주치게 되는 이성이 은근히 신경 쓰이기도 하고 잊고 살았던 옛사랑을 우연히 맞딱드리는 곳...

술에 취한 아저씨의 횡설수설....큰 소리로 통화하는 아줌마....쪽지를 돌리며 구걸하는 장애인...오래된 팝송을 크게 틀어 대거나 천원짜리 번개상품의 소란스런 광고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곳....

이것이 바로 한국의 지하철 풍경이다.


 

일본 지하철 드라마 속 그 장면


그러면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얼마전 흥미있게 보았던 일본 드라마 “전차남”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오타쿠라며 주위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항상 되는일도 없고 매사 자신감도 없이 축 쳐진 어깨에 땅이 꺼질 듯 한숨만 쉬며 시레기죽같은 인생을 자학하며 찌질하게 살아가던 좌절맨 총각 하나가 지하철을 탔다. 조용하고 한산한 지하철......그런데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던 여성을 보고 깜짝 놀랜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책을 보던 여성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았고 총각은 말 그대로 첫눈에 뻑간 채 맛이 간 눈탱이로 정신없이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술에 취한 듯한 중년남자가 나타나 지하철 승객들에게 시비를 걸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휴대폰 통화는 절대 하지 않고 남들한테 폐 끼칠까봐 신문도 반으로 접어서 본다는 일본이지만 행패 부리는 난동맨 출현은 이곳도 별 다를 곳이 없다.

그런데....난동맨이 좌석에 앉아있는 승객들 앞

을 한명 한명 지날때마다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며 한참동안 승객들을 괴롭히고 있는데도 승객들은 모두 그냥 앉은 자리에서 끽소리도 못한 채 그냥 당하고만 있다. 누구하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반항하는 사람도 없다...심지어 똑바로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난동맨은 단지 술에 취해 폭언을 일삼고 있을 뿐 덩치도 크지 않았고 흉기도 들고 있지 않았는데 승객들은 누구하나 한 마디도 못한 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땠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술에 취한 누군가가 어떤 사람에게 행패를 부렸다면 그 사람은 소리를 질렀거나 주변사람들이 말렸거나 시끄럽게 항의를 하면서 싸웠거나 해서 큰 소란이 났을 것이다. 여자들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분명 모두들 그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마 1분도 지나지 않아 행패가 저지 되었을 것 같은데.....

물론 드라마일 뿐이긴 해도.....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었다. 원래 일본인들은 그런 상황이 터져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일까?

어쨌든 앞서 얘기했던 그 아름다운 여성앞으로 다가온 난동맨.....예쁜 여자 앞에서 본격적으로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다. 역시 주위의 승객들은 모두 구경만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좌절맨 총각......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기만한 소리로 외친다.

 “ 그그그그만 두두두두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에게 날아온 주먹세례.... 하지만 뒤늦게 쫓아온 안전요원에 의해 난동맨은 잡혀가고 사건은 마무리된다. 평소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여자는 평생 사귀어 본적도 없이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에나 열광하며 살아왔던 총각이 난동맨에게 대들 수 있었던 갑작스런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것일까? 아마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을 듯...

소심하기 짝이 없던 오타쿠 총각....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난동맨에게 대든 지하철의 영웅이 되고 부잣집 아름다운 아가씨와 데이트까지 하게 되고 오타쿠의 한계를 극복하고 결국 사랑에 골인했다...는 이야기.



오타쿠도 멜로드라마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이 드라마를 본 남자들 대부분은 남자 주인공에 대해 한마디씩을 내뱉는다. 주인공이 찌질해서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거다. 본국인 일본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국남자들은 이 드라마 주인공 남자의 너무나 리얼한 오타쿠연기에 쉽게 감정이입을 당해 버린게 아닌가 싶다. 좋아하는 여자한테 말 한마디 못하는 못난 남자의 캐릭터가 마냥 짜증나기만 하고....심지어는 키작고 못생긴 남자와 예쁘고 돈많고 착하기까지 한 여자와의 러브스토리를 두고 아무리 드라마지만 돈많고 예쁜여자가 왜 저렇게 못난 놈과 사귀겠냐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드라마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쨌든....그저 다들 재벌이시고 멋지시고 완벽하기만 한 한국 드라마의 핸섬한 남자 주인공들만 보다가 비호감의 캐릭터가 그것도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오타쿠라는 현실사회에 존재하는 무리를 대표하여 드라마속에 당당한 남자 주인공으로 뚝딱 나와준 것이 몹시 흥미로웠다고나 할까...!


네티즌이 맺어준 사랑

그러나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저마다 앞다투어 코치해주며 응원해주던 무수한 조연들.....이른

바 “독신남 인터넷 게시판”에 모여들어 댓글을 달며 주인공을 코치해주던 네티즌들이었다.

제각각 저마다 자신의 우울한 사연에 갇힌 채 골방에 틀여 박혀 살던 그들은 어느날 지하철에서  첫눈에 반한 여자를 난동맨에게서 구해준 일로 여자의 선물과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는 한 남자의 사연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어쩔줄 몰라하는 그를 응원하기 시작한다. 여자와 데이트할 장소를 골라주고 패션을 코치해주며 전차남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면서 그를 격려해준다. 

전차남이 인터넷 친구들에게서 용기를 얻고 드디어 사랑의 고백을 하고 둘의 사이가 무르익어 가는 것을 보던 네티즌들은 자기일처럼 환호하며 좋아한다. 또한 전차남의 연애성공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제각기  자신 스스로

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일그러져있던 자신들의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된다.

별거했던 남편이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 전화를 했고, 냉전 중이었던 부부가 화해를 하며, 좌절했던 운동선수가 재기의 마음을 다졌으며, 포기하고 떠나보냈던 옛 연인을 다시 만나러 가기도 한다.

모자란 자신과는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완벽한 여성을 향한 한 오타쿠 청년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갖은 노력을 다하며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수많은 네티즌들은 각자의 인생의 희망을 다시 한번 꿈꾸며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전차남을 위해 끝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온라인 세상에서 만나 마음을 나누고 함께 감동 받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인간사회의 장벽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만남이며 그것의 집중력과 허심탄회함은 오프라인의 사회적 가면을 쓴 인간관계와는 또 다른 진한 감동을 준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제목은 “네티즌이 맺어준 사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오덕후를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인터넷에서 만난 모임이나 동호회가 활발하고 오프라인까지 이어지는 인맥을 형성하는 경우를 이야기 하면 인터넷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끔 놀라며 말한다. 인터넷에서 어떻게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곳에서의 만남을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가? 라고....

인터넷이나 네티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어쩌면 좋은 점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은 것처럼 여겨지는것 같다. 사실 인터넷에는 무수한 악플들과 사건사고...근거없는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는게 사실이다...얼마전까지도 발생했던 한 아이돌 가수의 사건만 보더라도 인터넷을 무조건 신뢰하거나 좋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때로는 오프라인에서 단절되었던 이야기를 마음 편히 풀어나가며 치유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온라인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블로그에 달린 이름모를 네티즌의 댓글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공통된 화제에 열을 올리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프라인까지 연결된 그 힘은 대단해서 과거 촛불같은 대대적인 시위가 조직되기도 하고 사회 곳곳의 이슈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동네마다 피씨방이 들어서 있고 집집마다 컴퓨터가 없는 집이 없으며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이 없다는 아이티강국인 우리나라.....하루라도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네티즌의 한 사람으로서 가끔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이렇게 따듯한 인터넷과 네티즌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일본엔 오타쿠...한국엔 오덕후가 있으니.....여성들에게 비호감인 오타쿠 남성마저도 드라마의 훌륭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처럼....드라마 작가님들아! 온통 재벌남과 꽃미남에 잘난 놈 투성이인 식상한 한국 드라마 남주인공 계보에 우리도 가끔은 좀 못말리는 덕후남이나 찌질하지만 미워할수 없고 답답하지만 내 주위에 한명 있을것 같은 남자 캐릭 하나 쯤 발굴 추가해서 연애도 시켜주고 이웃집 오빠같이 유쾌하게 한번 웃겨주면 어떨까요? 네? 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