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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을 치다

보름동안 혼자 일본 돌아댕기기 6

보름동안 혼자 일본 돌아댕기기 6

 

2. 나가사키에서의 나흘간  (1) :  태풍에 모든것이 멈춰버린 하카타(博多)역, 미야자키(宮崎) 가는길.

후쿠야마 마사하루 (福山雅治)로 도배된 나가사키(長崎)역, 이나사야마(稻佐山) 야경

 

 

 

 

도쿄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나리타에서 큐슈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지금부터의 일주일간은 큐슈에서 지낼것이다.

사실, 이번 여행의 애초 목적은 8월 29일에 나가사키에서 있을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이나사야마 공연때문이었다. 티켓당첨후부터 나는 이번 여행을 계획했고, 이 기회에 일본에 있는 지인들을 두루 두루 다 만나고 오기로 결심하고 회사까지 때려치웠다.(물론 이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고 진작부터 전직을 계획하고 있었던 거지만.. ^^;;)

 

나리타에서 두시간 걸려 후쿠오카에 도착 후, 미리 호텔 체크인을 해두고, 하카타에 들려 나가사키로 갈 예정이었는데...

하카타역에 와보니....많은 사람이 승차를 못한채 터미널에 모여 웅성대고 있었고 모든 열차가 운행이 정지된 상태였다.

승강장은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역무원에게 언제 열차가 움직이냐고 물어봐도 자기도 알수없다는 대답만 들려왔다.

 

버스터미널쪽은 어떨까 궁금해서 가봤지만, 역시 그곳도 큐슈내의 도시로 이동하는 모든 버스가 운행중단이라는 방송만 들려오고 있는채 사람들은 맥없이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오늘 밤안으로 나가사키의 숙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러다간 노숙하게 될지도 모르고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꼬일지 알수없어 외국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당황스럽고 불안하기만 했다.

 

일단은 나가사키 숙소로 연락해서 상황을 얘기하고 버스가 움직이면 다시 연락한다고 통화를 마친뒤 나도 대합실 의자에 앉아 상황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일본여성에게 말을 걸어 보니, 정말 큰일이라고 응수를 해준다. 그러면서 자기는 점심때부터 몇시간째 계속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면서 여유있게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모든 버스와 열차가 멈췄는데도 누구하나 큰소리내지 않고 침착하고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는 일본사람들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 정도로 자연재해에 익숙해져 있는 일본사람들이라니...

 

다행히 나가사키로 가는 완행버스가 한대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티켓을 끊고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하카타역에 도착한게 오후 4시경이었고 나가사키로 출발한게 6시쯤으로 그 동안은 멘붕의 두시간이었다. 

버스는 정류소마다 돌고돌아 숙소에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도착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실은 다음날 아침 일찍 7시반 버스를 타고 지인을 만나러 미야자키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티켓 결제까지 해논거라 어떻게 할수도 없었다. 이제 태풍은 한풀꺾였으니 별탈없겠지 싶어 아침일찍 날씨는 화창했던 나가사키 터미널로 나가 별탈없이 나가사키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나....버스는 예상과 달리 도착예정 시간보다 무려 4시간이나 더 지연되었다. 

가는 중간 일차선 도로에서 사고도 났고, 엄청난 정체는 태풍의 여파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원래 아침 7시반 나가사키를 출발해서 오후1시에 미야자키역에 도착하는 5시간반 걸리는 장거리 노선인데다 4시간이나 연착이 되는 바람에 그날 오후 4시에나 미야자키 역에 도착할수있었다. 그날 하루종일 내내 도로에 있었던 셈이다.

 

또한 1시에 도착해서 지인과 점심을 먹고 바로 오후4시 버스로 나가사키로 돌아올 예정이었던 나는, 출발버스가 1시는 커녕 돌아가는 버스 예약시간보다 더 늦게 도착하게 되자, 그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운전기사로부터 4시간 연착될거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일본인 승객들의 반응이었다...

승객들은 비명같은 한숨만 한차례 내쉬고 나서는 그 다음부터는 누구하나 일절 말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버스안에서 휴대폰 사용까지 금지되어 있었는데, 미야자키역에서 기다릴 지인 때문에 급히 연락을 해야겠기에 기사에게 휴대폰 써도 되냐고 물어보고 나서 OK가 떨어지니까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도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장장 9시간 반 동안, 그 많은 승객들이 아무도 한마디 말하지 않고 정체된 도로에 갇혀있는데...

그 상황에 누군가 말한마디 할라치면 어디선가 돌이 날라올것 같은 숨막히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중에 일본에서 살았다는 한국인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니, 그러니까 일본애들이 이상한 사람이 많은거예요. 라고 대답한다....ㅋㅋㅋ

 

한국같았으면 어땠을까. 아마 한바탕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일단 자연재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다, 저렇게 오랫동안 도로가 정체되도록 놔두지도 않았을것 같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빨리빨리...도로를 뚫어주던가 버스기사도 규칙따윈 무시하고 요령을 부렸던가 길을 돌아갔던가 해서 지연시간을 최대한 단축했었을것 같다. 아무리 자연재해라지만 이러쿵 저러쿵 불평불만이 쏟아졌을 승객들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아무리 태풍에 사고가 나서 그랬다지만, 도로가 일차선에서 꽉 막혀있었는데, 도쿄같은 대도시와는 달리 큐슈지역은 도로사정이 이렇듯 불편하구나. 고속도로와 이어지는데 도로를 좀 넓히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걸까.

도쿄같은 사통팔달의 세계적 대도시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지방은 이렇게 교통이 불편하기 짝이 없구나...

 

자연재해에 길들여지듯, 사회적인 분위기에도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일본인의 정서를...조금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미야자키역에 도착해보니, 일본언니가 눈이 빠지게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티켓은 내일 아침 출발하는것으로 변경해놓고, 오늘밤은 미야자키의 언니네집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왕복 10시간이상이 걸리는 먼길을 다녀오는데 하루정도 여유있게 일정을 잡아놓는편이 좋았겠지만, 5년전에 한번 방문한 이후, 가끔 블로그에서나 인사를 해오던 사이라 어떻게 될지 몰라 스케줄잡기가 애매했었다.

 

차가 엄청나게 막혀서 고생했다고 하자, 일본언니는 때를 잘못 잡았다며, 이곳에서도 이런 태풍이 오는건 아주 드문일이라고 했다. 점심도 거른 나를 근사한 소바전문점으로 데려가  대접해주고, 집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이런 저런 서로 궁금했던 이야기들...한국, 일본에 관한 얘기를 일본어, 한국어 섞어가며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그날밤은 편안히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 일본지인분은 한국드라마 매니아로써 인터넷에서 그 분의 블로그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는데...한국의 최근 정보를 나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한국통이라 웬지 이분의 블로그에 잔뜩 포스팅되어 있는 최신 한국드라마 리뷰를 보면 내가 상을 주고 싶을 정도로 고맙기도 하고 일본어로 된 한국드라마 이야기를 읽어보는것도 즐거워서 자주 찾아가곤했다. 이런 소중한 인연을 계속하고 싶어 다소 무리해서 미야자키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것.

이번에 만난건 처음 만났던 5년전 이후 두번째의 만남이다.

 

 

다음날 아침 아쉽지만 이별을 고하고....서둘러 나가사키로 돌아왔다.

내일모레면 이나사야마 콘서트가 있는 날이고, 내일은 그간 벼르고 별렀던 후쿠야마의 고향 나가사키의 명소들을 하루종일 둘러볼 작정이다. 다행히 가는 길은 막히지 않고 예정된시간12시경에 깔끔하게 나가사키역에 도착했다. ㅋㅋㅋ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콘서트로 도배가 되어있는 나가사키역....

나가사키의 아들인 후쿠야마가 고향인 나가사키에서 공연을 하게 되자, 해외는 물론, 일본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팬들로 인해 나가사키의 열차와 버스는 콘서트 당일 이틀에 걸쳐 열차, 버스 노선이 추가 운행되게 되었고..

공연발표를 했던 몇달전부터 나가사키의 모든 숙소가 순식간에 동이나 버렸다. 나 역시도 호텔을 잡을 수 없어 후쿠오카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이제 공연장인 이나사야마 야외무대를 사전답사 할겸, 세계 3대 야경이라는 이나사야마의 야경을 미리 봐두기 위해 전망대로 올라가본다. 나가사키역에서 5번버스를 타고 종점(150엔)에서 내리면 바로 이나사야마 콘서트장인 야외무대가 나타난다. 벌써 야외무대 설치가 끝나고 최종 리허설을 하고 있는것 같았고, 관계자외 접근은 금지되어있어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 멀리서 바라보았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바로 이날 당사자 후쿠야마가 미리 와서 리허설 중이었다고 한다.  ^^;;

 

 

 

이나사야마 전망대는 로프웨이로도 올라갈수있다는데 지금은 운행이 정지중이다.

야외무대에서 전망대까지 가파른 언덕이 힘들어 무료 셔틀을 타고 가라고 하는데, 성질 급한 나는 기다리지 않고 십여분정도 등산하듯 전망대로 올라갔다. 틈틈히 내려다 보이는 나가사키의 풍광을 감상하면서 이정표대로 쭈욱 올라가보니 전망대 건물이 나타난다.

 

콘서트 당일에는 아마 버스는 운행정지되고 대신 왕복 1000엔짜리 유료셔틀만 다닐것 같다.  그날에는 전망대 야경을 구경하긴 어려울테니 오늘 미리 실컷 야경을 봐둬야한다.

 

전망대 건물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방으로 둘러싼 유리벽으로 나가사키 시내전경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야경도 아름답겠지만 이렇게 탁트인 대낯의 나가사키도 몹시 예쁘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산과 통영을 섞은 듯한 그런 예쁜 항구도시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그런데 야경을 감상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어두워질때까지 죽치고 있기로 한다. 나가사키 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나가사키의 유명한 음식중하나인 도루코 라이스를 주문했다.

 

볶음밥, 스파게티, 돈가스를 합친듯한 음식인데...솔찍히 별로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애들이 좋아할만한 맛이다.

 

식사를 마시고 캔커피를 뽑아들고 전망대 옥상으로 올라가본다.

 

탁트인 옥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난간 아래에는 나가사키 시가지가 장난감 블록처럼 펼쳐져 있다. 야경을 보기위해 어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가 어느새 전망대 옥상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부산사투리가 들리는데 한무리의 갱상도 아줌마들이 단체로 관광을 온듯싶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서 사투리로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는 일본인인척...잠자코 있었다. 도쿄에서는 드물었는데 과연 큐슈로 넘어오니 여기저기 한국말이 아주 많이 들린다. 솔까, 일본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는게 그리 반갑지는 않다. (ㅡ,.ㅡ);;

 

 

 

슬슬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건너편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이제 어둠이 내리면서....하나둘씩 도심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이때가 가장 예쁜것 같다.

 

 

사진한장에 담아내기엔 택도 없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나가사키의 야경이 펼쳐진다....

모진 폭풍과 교통대란을 뚫고 큰 사고 없이 나가사키에 입성.  오늘이 벌써 여행 열흘째가 되는 밤이다.

남은 날은 불과 닷쌔뿐...이제 여행은 슬슬 막바지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내일은 나가사키 시내를 둘러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