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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을 치다

한류팬 일본인은 봉?


 

일본언니들, 서울에 오다.


어느날 무심코 본 일본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문득, 일본어를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어 야후재팬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한국드라마들로 도배가 되있는 일본인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니까 그게 말로만 듣던 한류팬들이었다. 방문자도 엄청 많았고 댓글들도 장난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한국연예인들을 죄다 꾀고 있고 한국드라마가 너무 재밌다고 난리들이었던 일본아줌마들에게 호기심이 발동해 할 줄도 모르는 일본어로 번역기 돌려가며 댓글을 몇 번 주고 받은게 인연이 되서, 결국 도쿄에서 몇 명 만나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메일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그 중의 한명이 다른 친구들과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부랴부랴 00호텔로 찾아가 그들을 만났다. 일본인을 만날때마다 느끼지만 외모는 한국인과 별 다를바가 없이 이웃에 사는 평범한 아줌마들 같은데 하는말을 바로 알아 들을수가 없는게 새삼 이상하다. 지금은 비행기로 한 두시간이면 가는 동넨네...같은 드라마를 보고 같은 느낌으로 즐거워하건만 이렇듯 말이 다르다니....만약 세계의 언어가 모두 같았다면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그들과 처음 간 곳은 명동에 있는 권상우커피숍...이 언니들이 아니면 생전 가보지도 않았을 그 곳에서 이런저런 한국드라마, 일본드라마에 대한 수다를 떨었다. 아는 단어로 대충 몸짓 손짓 표정을 섞어가며.....어쨋든 대충 의미가 통했던지 끄덕끄덕한다. 역시 공동의 관심사인 드라마가 있으니까...길고 자세하게 얘기 안해도 뭔가 통한다. 한 명은 파리의 연인을 보고 한국드라마에 뿅가게 됬고, 한 명은 이범수의 열렬한 팬이고, 한 명은 최근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반해서 장근석과 씨엔블루 팬이 됬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은 역시 언어말고도 한국인과 다른점이 분명 있었다. 첫날은, 영화 식객을 일본어 자막판으로 감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자막이 나오자 나는 습관적으로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일어난 사람은 나뿐....아무도 일어나지 않고 스크린이 꺼질때까지 모두 계속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 영화관은 모두 일본인뿐이었던 것. 한국에선 엔딩자막이 나오자마자 모두 우루루 일어나 나가는게 보통이었는데.....무심코 혼자 일어나서 나가려던 내가 뻘춤해지는 순간이었다.

한번은, 음식점에서였다. 내게는 특별한 손님들이니까 당연히 한끼 정도는 내가 대접하려고 모두 계산을 했고, 택시비도 얼마 안되니까 내가 지불을 했는데, 갑자기 계산기를 꺼내서 그날의 여비를 모두 계산해 정확하게 나누고는 내게도 돈을 받으라며 주는게 아닌가....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언니들은 극구 사양하면서 내게 돈을 건네주었고 결국 나도 언니들의 더치페이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뭐...더 합리적이고는 생각하지만...웬지...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ㅋㅋㅋ


일본인은 봉?


일본언니들을 어디로 모시고 갈까 적잖이 고민했었지만, 실은, 언니들이 서울에 와서 가고 싶은 곳은 정해져있었다. 한류스타가 운영하는 카페나, 면세점, 명품짝퉁을 파는 가게, 한국요리점 정도? 언니들의 안테나는 주로 쇼핑에 고정되있었다.


한국드라마 디비디를 사러 명동지하상가의 한 가게를 가보니...진짜 거기엔 웬만한 한국드라마 dvd와 ost가 가득있었다. 한국에선 히트친 드라마가 아니면 대형서점에 가도 찾기 힘든데...들어보지도 못한 희안한 아침 드라마 오에스티들까지 죄다 갖춰져있다. 역시...명동에 가니 다 있구나. 이거 원 한국드라마 ost나 dvd는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이 사는 것인가? ㅡㅡ; 그런데 좀 싸게 팔지...대형서점보다 훨씬 비싸게 팔고 있었다.


면세점의 명품브랜드부터 저가 한국화장품까지 모조리 휩쓸고 다니며 한 보따리씩 쇼핑을 시작했다. 드라마 파스타에서 나온 귀마개를 찾아 노점을 헤매 겨우 발견....흡족한 표정으로 물건을 샀는데, 포장은 안해주느냐고 묻는다....한국의 노점에선 포장을 안해줘요....일본언니...그제사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푸드코드에 가보니 한국김을 팔고 있다. 언니가 나보고 어떤게 맛있냐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할 수 없어 난감했다. 그곳에 있는 김들은 동네마트에선 볼 수 없는 것들뿐이고 가격도 두배나 비쌌다. 일본인들에게 팔기 위해 질이 좀 좋은 김들을 팔고 있는 것이려나? ㅡㅡ;

명동의 한 가방가게에 갔는데, 내가 “저분들은 한국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는 열혈팬들”이라고 좀 싸게 해달라고 말했더니, 가게아줌마, 엄청 반가워하더니 덥석 손을 잡고 안쪽으로 들어가 화기애애하게 한국드라마에 대한 수다를 떤다. 그러더니 곧 어디선가 창고에서 짝퉁물건을 잔뜩 가지고 와서 꺼내놓는다. 꺼내놓는 물건들...노점보다 훨씬 가격이 높다. 사고 싶은 물건이 없다고 하자 금방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는 주인아줌마....이것저것 골라보고 물어보다가 결국 사지도 않고 나가는 일본손님이 야속하겠지만...장사와는 별개로 한국드라마를 좋아해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는 없었을까?


일본언니가 가지고 있는 관광팜플렛에 소개된 음식점으로 찾아갔다. 류시원의 친척이 운영한다고 알고 찾아간 것인데 물어보니 아니란다. 삼겹살을 주문하자 4명이 왔으니까 무조건 4인분을 시켜야 된단다.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대답이 시쿤둥하다. 고기를 구워주는 직원의 표정도 쌀쌀맞다. 여러명이 와서 많이 시키지도 않고 이것저것 물어봐서 귀찮았던 걸까? 뒤집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오지도 않길래 부랴부랴 내가 이리저리 불을 조정하고 고기를 구웠다. 관광팜플렛에 소개된 음식점이라면 조금은 친철하게 해도 좋았을텐데....도쿄의 신오오쿠보에 있는 삽겹살값은 여기보다 비싸냐고 했더니 더 싸다고 한다. ㅡㅡ;


삼청동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일본인들하고 같이 삼청동을 가는데 한국인인 나도 첨 가보는 곳이라 난감하다며 가볼 만한 곳이 있으면 알려달라며 기사아저씨랑 수다를 떠는데 이 기사아저씨, 대뜸, 올림픽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애들은 절대 한국에 못이긴다. 메달 하나도 못딴다는 얘기를 몇 번씩 한다. 아주 큰소리로...한국 드라마 많이 봐서 웬만큼은 한국말을 알아듣고 있었을 언니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 기사 아저씨는 일부러 들으라고 그런 말을 하신 것 같은데....일본 사람들이 미워서 그런걸까? ㅡㅡ;




드라마로 뜬 한국, 왜 드라마박물관 하나 없을까?


한국에 오기전에 언니들은 한국의 방송국을 가보고 싶어했다. 그 언니들은 모두 한국드라마나 영화관련 인터넷 모임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현재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외국싸이트를 통해서 영어자막으로 보거나 한국어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방송국 싸이트에 들어가 시청할 정도로 한국드라마에 빠져있기 때문에 한국의 방송국에 가보는 것을 무척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방송국 3사를 통털어 외국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내국인을 대상으로 단체예약 밖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kbs견학홀만이 언제든 갈 수 있었지만, 그곳은 주로 유치원 아이들이 주로 가는 곳인 듯, 건물 기둥에는 온갖 낙서가 지저분하게 빼꼭히 적혀있었고, 20분이면 한바퀴 다 돌 정도로, 겨울연가 포스터만 한쪽 벽에 크게 전시되어 있을 뿐,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입구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일본어 팜플렛만 봐도 이곳엔 일본인이 거의 오지 않는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도쿄의 엔에이치케이나 니혼테레비젼을 갔을때는 누구든 언제든 들어갈 수 있고 전시물이 꽤 있는 규모여서 오랫동안 관람을 할 수 있었는데...정작 드라마로 유명한 한국에 내외국인을 아우르는 변변한 드라마 박물관하나 없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방송3사와 드라마제작사가 함께 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드라마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고 기타 여러 가지 이벤트를 할 수 있는 드라마박물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한국의 드라마는 세계 각국에 방송되고 있고, 요새는 소재도 다양해지는 등, 컨텐츠도 점점 발전해가고 있다. 드라마가 없었다면 요즘의 명동거리에 그처럼, 일본인들이 바글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위의 높은 분들은 이런 기획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하시는 것일까?


김정은의 한국 영화를 보러 오고 시아준수의 뮤지컬을 보러 오고, 권상우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찾아가고, 한국의 영상물과 음반을 사러 오고, 김치와 김과 기타 한국 물건을 잔뜩 사가지고 돌아가는 일본언니들을 배웅하면서......한류스타가 한국관광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


한국음식은 너무 맛있다면서 감탄하던 언니들에게 김치와 김을 한아름 선물해드리고 서툰 일본어로 작별인사를 했다. 지금쯤 일본에서 한국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으려나...

자신의 일본 블로그에 그 날의 한국여행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다음에 또 한국에 오면, 갖고 싶다던 된장뚝배기 그릇을 예쁜걸로 또 하나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