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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을 치다

애 이름이 자살할 이름이라구요???


 

 애 이름이 자살할 이름이라구요???


연초가 되면 토정비결이니 운세니 인터넷에서 봐왔지만 진짜 점집에 한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 기회가 왔다. 시댁에 가보니 형님이 아주버님 직장이 안 좋을 것 같아 걱정하는 분위기다.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내가 아는데가 있다며 같이 가자신다.....평소 점이라면 일가견이 있으시고 전 재산을 다 털어 굿판까지 벌려보셨다는 점 매니아 시어머니를 따라 형님과 나도 쫄래쫄래 점집이라는 곳을 따라 가보게 되었다.


골목쟁이 단독주택에 들어가니 거실 옆방을 사무실처럼 꾸며놓은 곳에 나이를 알 수 없는 어르신이 책상 앞에 앉아있다.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불러주니 어르신은 붓펜으로 한자를 종이위에 써내려간다. 참 달필이다. 그러더니 돋보기를 쓰고 국어사전보다 곱절은 두꺼운 이름모를 책을 펴서 훓어보고는 이윽고 월운과 총운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남편의 이름위에 “대주”라는 말이 있길래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남편이 대주란다. 그러니까 여자는 대주,,,즉 남편에 따라 운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자 운세가 아무리 좋아도 남편이 좋지 않으면 여자도 좋을게 없다는 말이다. 여자 팔자 뒤웅박이란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어째 좀 씁쓸해진다. 그래....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해...나도 20대에는 남자를 그런 기준으로 만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드니 점점 생각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벌어논 돈도 없고 할머니가 되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변변한 직업도 준비못하고 있는데...40대가 정년인 지금의 직장에서 짤리면 남편한테 얹혀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들게 된다. 세상 살아보니 남자는 아무리 기술없고 뭣도 없어도 뭘 하던 한달에 백오십은 벌어오더라. 50이 넘어도 그럭저럭 일할 곳이 적지 않은 것 같더라. 반면 여자는 일할 곳이 없다. 나이가 먹으면 집에서 손주나 봐야 한다. 여자 나이 50이 넘으면 갈 곳이 없다. 세상에 능력 있는 여자가 많다지만 나한테는 남의 나라 얘기일뿐 경제적 독립....너무나 버거운 이야기다. ㅜㅜ


형님과 내가 올 한해 신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이 어르신 갑자기 형님과 형님의 아들이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한다. 게다가 형님아들은 자살할 이름이라는게 아닌가....그러면서 나쁜 이름 때문에 요절했다는 유명인의 사진과 기사가 실린 스크랩을 보여준다. 거기엔 최근에 자살한 최0실의 사진도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힐끗 보니 개명 30만원이라고 씌여 있다. 모든 서류업무 포함해서...

아뿔싸....이 곳은 작명을 주로 하는 곳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시댁 식구들은 최근 거의 개명을 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용하다고 입에 침에 마르게 칭찬하시던 이 점집에 시누이와 남편...시누이 자식들....동서까지 모두 이곳에서 개명을 했던 거로구나..ㅡㅡ;


시댁으로 돌아오니 시아버님이 버럭 화를 내시고 아주버님과 남편까지 합세해서 야단을 친다.


“ 여편네들이 대체 거긴 왜 또 간거야! 또 쓸데없이 돈 쳐들이려고.. ”

“ 아버님....올해 운세 보러 갔는데 좋다니까 기분좋네요. 그치만 개명은 안해요...호호호 ”


아들이 자살할 이름이라는 말을 들은 형님....평소 점 같은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분이라 다행이 표정은 그런 말에 개의치 않아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속마음이야 엄청 불편했을게 뻔하다. 이름을 바꾼다고 운명이 바뀐다던가. 하도 인생이 퍽퍽해 이름이라도 바꿔서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이름보다 어떻게 마음먹고 사느냐가 더 중요한게 아니던가....하지만 자살할 이름이라니....아무리 장사속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그런 말을 듣고 개의치 않을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에게도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자포자기 할 이름이란다. ㅡㅡ;

귀가 얇아서인지 웬지 맞는 말 같기도 하다. ㅡㅡ;

예전에 운세 싸이트 같은 곳에서 평을 봤을때도 별로 좋은 이름은 아니라는 걸 보긴 했었다. 하지만 내 이름이 어떤 이름인가. 유명한 소설속의 여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던가. 그 여주인공처럼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인생을 살겠노라 홀로 상상하기도 했던 이름...옛날에 잘 나가던 여성 국회의원이라 괸히 우쭐하기도 했던 이름....아버지가 의미를 두고 손수 지어주신 이름....무엇보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싫던 좋던 나를 기억하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이름이 아니던가.....


나는 내 이름을 바꾸지 않으련다.

자포자기하면서 살지라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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